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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로그램 음악 vs 절대음악 │ 낭만주의의 논쟁
서론 │ 낭만주의 음악을 가른 두 흐름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은 인간의 감정, 자연, 철학, 문학과 깊이 연결된 예술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습니다. 하나는 프로그램 음악(Program Music)으로, 음악이 문학적·서사적 배경이나 외부 이야기를 표현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다른 하나는 절대음악(Absolute Music)으로, 음악은 스스로 독립적이며 언어적 해석이 필요 없는 순수 예술이라고 주장하는 흐름입니다. 이 논쟁은 단순한 미학적 차이를 넘어, 낭만주의 음악의 성격을 규정한 중요한 대립이었습니다.
프로그램 음악이란 무엇인가
프로그램 음악은 특정한 이야기를 전달하거나, 문학적·회화적 주제를 묘사하는 음악을 말합니다. 즉 음악 외부의 요소가 작품 이해의 핵심이 됩니다. 예를 들어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은 작곡가 자신의 사랑과 환상을 기반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으며, 각 악장에는 "무도회", "사형장으로 가는 행진" 같은 구체적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돈 주앙』,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또한 특정 문학 작품이나 인물을 음악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프로그램 음악입니다.
이러한 음악은 청중에게 ‘이야기를 듣는 듯한 경험’을 제공하며, 낭만주의 시대에 예술의 종합성을 강조한 경향과 맞닿아 있습니다.
절대음악이란 무엇인가
절대음악은 음악이 외부 이야기에 종속되지 않고, 그 자체의 구조와 형식으로 완전성을 지니는 예술이라는 입장입니다. 절대음악의 대표자는 브람스였습니다. 그는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을 통해 문학적 배경 없이도 음악 자체로 감정과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절대음악은 특히 베토벤의 후기 교향곡과 실내악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베토벤의 음악은 철학적 깊이를 지녔지만, 구체적 서사를 직접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절대음악의 이상에 가깝다고 평가됩니다.
절대음악의 미학은 ‘음악은 언어로 환원되지 않는 고유한 의미를 지닌다’는 관점으로, 형식미와 구조적 완결성을 중시했습니다.
리스트와 베를리오즈 │ 프로그램 음악의 선봉장
프란츠 리스트는 ‘교향시(Symphonic Poem)’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조하며 프로그램 음악을 대표했습니다. 그의 교향시는 문학·철학·역사적 주제를 음악으로 형상화한 단악장 오케스트라 작품입니다. 예를 들어 『전주곡(Les Préludes)』은 라마르틴의 시에 기반해 삶과 죽음을 음악적으로 표현했습니다.
한편, 베를리오즈는 『환상 교향곡』을 통해 ‘자전적 프로그램’을 제시했습니다. 이 곡은 청중이 줄거리를 먼저 읽고 음악을 감상해야 할 만큼 서사적 요소가 강합니다. 이러한 시도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고, 음악이 문학적·극적 의미를 담아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브람스와 절대음악의 옹호
요하네스 브람스는 프로그램 음악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교향곡과 실내악에서 베토벤의 전통을 이어받아, 음악 자체의 구조적 완결성을 추구했습니다. 그의 교향곡은 프로그램적 제목 없이 ‘교향곡 1번, 2번, 3번…’과 같은 단순한 명칭으로 불립니다. 브람스는 “음악은 음악일 뿐”이라는 입장을 견지했으며, 이는 절대음악의 미학을 대표하는 발언으로 기록됩니다.
브람스와 그의 지지자들은 음악이 언어적 설명에 의존하지 않고도 인간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문학이나 회화와는 다른 음악 고유의 추상성과 보편성을 옹호하는 태도였습니다.
논쟁의 중심 │ 바그너와 한스릭
이 논쟁을 구체적으로 촉발시킨 것은 바그너와 비평가 한스릭의 대립이었습니다. 바그너는 음악이 극과 결합하여 ‘종합예술(Gesamtkunstwerk)’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음악극은 문학, 무대, 음악을 아우르는 프로그램적 성격이 강했습니다. 반면, 오스트리아의 음악비평가 한스릭은 『음악적으로 아름다움에 대하여』라는 저서에서 음악은 순수한 형식미 속에 존재해야 하며, 언어적 서사로 환원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대립은 단순한 음악적 차이를 넘어 낭만주의 미학 전체를 흔든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낭만주의 음악사의 흐름에 끼친 영향
프로그램 음악과 절대음악의 논쟁은 낭만주의 음악을 두 갈래로 나누었습니다. 한쪽에서는 리스트와 베를리오즈, 바그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음악을 서사와 결합하며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극적인 표현을 추구했습니다. 다른 쪽에서는 브람스, 슈만의 일부 작품이 음악적 형식의 순수성을 지향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두 흐름이 서로 배타적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많은 작곡가들은 두 가지 경향을 모두 수용하며 작품 세계를 확장했습니다.
예컨대 차이콥스키는 프로그램적 요소가 있는 교향시를 작곡하면서도, 전통적 교향곡 구조를 유지했습니다. 이는 두 경향이 단순히 대립하기보다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작동했음을 보여줍니다.
20세기 이후의 평가
20세기 이후 음악사에서 프로그램 음악과 절대음악의 대립은 다소 희미해졌습니다. 영화음악과 전자음악은 분명히 프로그램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현대 교향곡이나 실내악은 절대음악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즉, 현대 음악은 이 두 개념을 대립적으로 보지 않고, 각각의 미학적 가치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발전했습니다.
오늘날 프로그램 음악은 서사를 통해 청중과 소통하는 방법으로, 절대음악은 음악 자체의 논리와 구조로 감동을 주는 방법으로 공존합니다.
결론 │ 논쟁이 남긴 유산
프로그램 음악과 절대음악의 논쟁은 낭만주의 시대 음악의 본질을 둘러싼 중요한 대립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두 흐름 모두 음악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프로그램 음악은 음악이 문학·예술과 결합할 수 있는 길을 열었고, 절대음악은 음악의 독립성과 순수성을 지켜냈습니다. 이 논쟁은 우리에게 음악이 단일한 길이 아니라, 다양한 표현 방식과 철학적 기반 위에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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